믿음 101

by Stephen Davey Scripture Reference: Leviticus 24–25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12). 솔로몬이 말하는 것은 철물점에 가서 질긴 밧줄을 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닥을 모아 우리의 삶 속에 엮어 넣으실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레위기 2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강화하시기 위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2절에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수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등불을 켜 놓아 끊이지 않게 할지니라.”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지속적인 과제를 맡기십니다. 그들은 성막의 등잔을 위한 최상의 감람 기름을 가져와야 했습니다—값싼 기름이 아니라, 순수한 기름이었습니다. 이 등잔대는 아마도 이스라엘이 세상에 비추어야 할 진리의 빛을 상징했을 것입니다. 또한 장차 성전에서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실 예수님을 가리키기도 합니다(요한복음 8:12).

또 5절에서는 매주 제사장들이 열두 개의 떡을 만들 수 있도록 백성이 고운 가루를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신선한 떡은 매주 성소 안의 금상에 놓였으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대표했습니다. 이것 역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예표했습니다(요한복음 6:35).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백성과 제사장이 함께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제사장들에게만 맡기실 수도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모든 백성이 성막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엮어 넣으시는 한 가닥의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주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고립 속에서가 아니라, 협력 속에서 살아가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몸이라고 불립니다. 여러분은 발이나 손, 귀나 근육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믿는 공동체 속에 맞게 지으셨고, 여러분은 섬김의 자리를 찾을 때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모세와 하나님께서 성소에 관한 말씀을 나누시던 중, 10절에서 갑자기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이더라.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그를 모세에게로 끌어왔다.”

한 남자가 다른 사람과 싸우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한 것입니다. 여기서 “저주하다”라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욕설이 입에서 튀어나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부정하고 대적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공공연히 대적한 것입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이 모독자에 대한 판결을 내리시며, 모든 백성의 손으로 그에게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하십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두 번째 진리의 가닥을 주십니다. 곧, 하나님의 백성은 함께 주님을 섬길 뿐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함께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것은 즉각적인 사형 선고를 불러왔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인류 전체가 동일한 심판 아래 놓여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최종 심판이 지연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지연 때문에 세상은 하나님을 욕되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날이 오면 모든 죄가 드러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욕되게 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법정에서 영원한 판결이 내려질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0:11-15). 결국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더 나아가 사형 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17절: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이것은 전쟁 중 전사나 우발적 과실치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살인—오늘날 말하는 “일급 살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살인죄에 대한 사형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창세기 1:26-27). 인간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영과 진리로 그분을 예배하며, 또한 불멸의 영혼을 소유하고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어떤 동물도 불멸의 영혼이나 이러한 책임을 부여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실상 땅 위에서 하나님의 대표를 죽이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범죄입니다.

24장의 원리는 범죄와 형벌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죄는 사형이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형 제도는 인간의 생명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살인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결과는 심각할 수 있지만, 죄는 용서받을 수 있으며 살인자도 회개한 믿음 안에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 25장으로 넘어가면, 하나님은 세 번째 가닥을 우리 삶에 엮으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함께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함께 존중할 뿐 아니라, 주님을 함께 신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신뢰는 “안식년”이라는 실제적 사건을 통해 훈련되었습니다. 1–7절은 이스라엘이 매 7년째 되는 해에는 땅을 쉬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다시 말해, 농사를 짓지 말고 수확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7년마다 반드시 “믿음 101” 강좌에 등록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공급하시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7년마다 한 해 동안 월급을 받지 않고 지내는 것과 같았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10절에서 “희년”을 제정하십니다. 50년째 되는 해에 이스라엘은 빚을 탕감해야 했습니다. 팔렸던 땅은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해 종살이하던 이들은 모두 해방되어야 했습니다. 모든 빚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를 착취하지 못하도록 보호했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들에 대한 긍휼을 배우게 했습니다. 이 법은 탐욕과 물질주의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25장은 또한 형편이 어려워 땅을 팔 수밖에 없는 형제의 땅을 친족이 대신 사서 되돌려 주도록 명령합니다. 빚 때문에 자신을 종으로 팔 수밖에 없는 사람 역시 친족이 값을 치러 그를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규정들은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고 긍휼을 실천하게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 이들은 특별한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훗날, 경건한 사람 보아스는 가난한 친족의 땅을 무르며 그 집안을 회복시켰고, 결국 그의 아내가 된 룻을 얻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믿음 101”이라는 과정에 두셨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원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파멸시키거나 낙심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존중하며, 신뢰하는 이 세 가닥의 줄로 여러분을 견고히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하나님을 따르는 삶은 일상의 사소한 일들 속에서 다른 이들과 협력하며 이루어집니다. 예배, 범죄에 대한 형벌, 안식년과 희년의 규례는 우리가 서로 협력하고 격려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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